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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야기7

영국 차 이야기 아주 작은 찻잎 한 장도 나는 훔치지 않았다. 나는 살해한 적도 없다는 것을 신에게 호소하노니, 한쪽 저울에는 차를 , 다른 쪽에는 인간의 피를 놓고서 그리고 죄 없는 형제를 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밀수 갱단의 일원으로 전해지는 로버트 느로트만의 묘비에서. 그는 1765년 3월 24일 해안가에서 무참히 살해되었다. 성 앤드루스 교회, 킨슨, 번머스, 영국- 영국의 차 마시는 습관의 진정한 탄생지는 커피하우스였다. 하지만 커피하우스의 성공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커피하우스의 자극적인 환경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정부는 이들을 세금을 더 많이 뽑아낼 수입원으로 주목하게 되었다. 당시 영국 왕조는 크롬웰 이후의 행정을 지탱할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16.. 2020. 7. 14.
영국의 차 이야기2 영국의 차 이야기 2 이때 차가 구원투수로 등장한다. 이제 사람들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점점 더 산업화되는 사회에서 알콜 중독이 생산성과 자본 투자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지게 되자.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자는 금주운동이 일어났다. 쌀로 만든 술을 대량으로 마시는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알코올을 해독시키는 차의 유익한 효과에 대해 알고 있었다. "중국인에게는 어떤 약초가 있는데 그들은 약초의 즙을 술 대신에 마신다. 이것은 또한 건강을 유지하며 우리의 무절제한 음주가 가져다주는 온갖 해약을 제거해 준다. 베네치아의 작가 지오반니 보테로는 1589년 이렇게 쓰고 있다 그리고 이제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 역시 이것을 발견했다.. 18세기 말에는 차가 일반인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되어 있었다. 싸고 뜨거우.. 2020. 7. 13.
영국의 차 이야기 영국인의 생활에서 차가 스타덤에 오른 것은 설탕 외에도 다른 것과 관련되어 있다. 설탕과는 먼 인연이 있으면서 중독성이 있고, 다른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것, 그것은 바로 알코올이었다. 알코올음료, 즉 술은 차와는 다른 형태와 밀도를 가지고 오늘날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영국인의 식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영국에 차가 존재하기 전에 그들은 아침에 무엇을 먹었을까. 부유한 삶의 아침상에는 양고기나 소고기스프, 빵과 비스켓에 에ㅇㄹ, 맥주 또는 와인을 동반했을 것이다. 이 메뉴에 해산물을 덧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새뮤얼 퍼프스는 그가 새해에 손님에게 제공했던 아침 식사를 '귤 한통, 깔끔한 소 혀 요리, 엔초비 요리, 각종 와인과 노스타운의 에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떤 상인은 청어, 호.. 2020. 7. 13.
차의 광고 1660년대 영국에서 스튜어트 왕가에 차를 남품하는 가게 주인인 토마스 가웨이는 유명한 차 상인었다. 그는 영국에서 최초로현대적 방법, 즉 광고를 이용하여 차를 전파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가웨이는 판매를 위한 차를 갖고 있었고 그것이 매우 맛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는 최신 음교가 갖고 있는 놀랄만한 효능을 열거한 광고 전단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가 주장한 끽다의 효능 중에는 성욕의 고취와 가벼운 구토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마케팅 이론은 광고를 이용하면 사람들이 보게 돌 것이고, 그러면 차를 살 거라는 단순한 원리를 따른 것이었다. 영국에서 차가 매우 짧은 시기에 자리 잡은 것을 생각하면 가웨이가 옳았을 수도 있다. 가웨이는 1670년 경 런던의 여러 지역에서 장사를 시작했으며, 1666년 .. 2020. 7. 12.
차가 만들어지는 과정 차의 세계는 수천 년 전 어느 신비로운 오후, 농업의 신이자 대담한 약초 학자인 신농이 중국 남부의 나지막한 구릉 지대에서 최초의 차 한 잔을 마신 그날부터 머나먼 길을 걸어왔다. 차는 오늘날 재배 국가가 36개국에 이를 정도로 전 세계 여러 지역에 자리 잡게 되었다. 차는 다습한 기후와 산성 토양을 선호하기 때문에 대부분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서 자란다. 케냐의 푸릇푸릇한 구릉 지대, 스리랑카의 열대 밀립, 인도의 다 아질 링의 안개 낀 산맥 아래와 아삼 평원의 거대한 다원, 또는 중국의 작은 가족 다원 등등 세계 여기저기에 연녹색의 부드러운 벨벳 같은 차 받이 펼쳐져서 멋진 전경으로 세계인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전 세계의 차 재배 면적은 620만 에이커(250만 헥타르)로, 그중 아시아 국가들이 9.. 2020. 7. 12.
차의 역사 1 쓴 차가 단차보다 많지만 차에는 이 든 맛이 다 있다네 누구를 위해 이것들이 단지 쓴지 모르지만 진주 빛 손끝이 망가질 때까지 찻잎을 딴다네. -중국의 찻잎 따는 노동자들의 노래 중에서 (봄의 정원에서 찻잎을 따는 노래)1859- 시인이 차를 찬양하는 동안, 황제는 최고의 차를 즐겼다. 공물로 받쳐지는 차는 , 중화의 지배자인 천자를 위해 특별히 제다하어 만들었다. 공물제도는 중국이 통일되기도 전인 전국시대(기원전480~221)에 시작되었다. 공물은 경쟁 제후국 간에 외교적 선물로 보내졌다. 공물은 매년 그 지역의 최고의 특산물을 궁궐로 보내야만 했다. 게다가, 황제는 최고 등급의 비단, 최고의 말, 좋은 도자기와 최고의 차를 위해 이 제도를 더욱 강화시켰다. 당나라 때는 절강성 항주에서 공물로 차를 바.. 2020. 7. 11.
차의 변천사 2 의학자인 화타華陀는 에서 차를 오랫동안 마시면 생각이 깊어진다고 기록했으며, 유교 경전의 집대성인 에서도 차를 '이을 끓여서 만드는음료'라고 정의하고 있다. 명사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만든 5세기의 책 에는 전한의 혜제 惠帝가 차를 사랑해서 그의 친구들에게 자주 권하였지만 "그들은 그것이 너무 써서, 몸이 안좋다는 핑계를 대고 정중히 사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5세기에 차는 약효가 있는 음료이자 일상품으로 거래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차를 끓여서 다른 재료들과 섞어서 탕처럼 마셨다. 이렇게 끽다는 중국에서 대중화되었으며, 오늘날처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음료로 만든 곳 역시 중국이었다. 그러나 차나무가 어느 곳에서 맨 처음 기원했는지에 댛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오랫동안 중국이라고알려져 있었지만 .. 2020.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