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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영국 차 이야기

by An마담 2020. 7. 14.

영국 차 이야기

 

 

 

아주 작은 찻잎 한 장도 나는 훔치지 않았다. 나는 살해한 적도 없다는 것을 신에게 호소하노니, 한쪽 저울에는 차를 , 다른 쪽에는 인간의 피를 놓고서 그리고 죄 없는 형제를 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밀수 갱단의 일원으로 전해지는 로버트 느로트만의 묘비에서. 그는 1765년 3월 24일 해안가에서 무참히 살해되었다. 성 앤드루스 교회, 킨슨, 번머스, 영국-

 

영국의 차 마시는 습관의 진정한 탄생지는 커피하우스였다. 하지만 커피하우스의 성공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커피하우스의 자극적인 환경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정부는 이들을 세금을 더 많이 뽑아낼 수입원으로 주목하게 되었다. 당시 영국 왕조는 크롬웰 이후의 행정을 지탱할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1660년 찰수 2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곧바로 판매되는 차 1갤론 당 8펜스의 세금을 부과하는 법을 재정해 버렸다. 게다가 커피하우스의 주인들은 사업 인가를 위해서는 돈을 내야 했으므로 이중으로 세금을 내야 했다. 이 새로운 조치에 대해 주인들은 차를 담는 용기를 밤에 몰래 채워놓는 식으로 정부 조사관들을 따돌렸다. 게다가 손님이 차를 얼마나 많이 마시는지 일일이 양을 계산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찻집 안은 초만원이었으며 열기로 가득 찼다. 세금은 머지않아 건조시킨 찻잎에 과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영국제국에 가장 불운한 결과를 낳게 한 세금이었다. 그 결과는 아메리카 독립전쟁, 즉 영국의 중요한 식민지 상실이자 미국의 독립으로 이어졌다.

차 세금은 정치적인 분위기와 정부의 필요성에 따라서 계속 변동했다 시간이 지나자 세금은 점점 더 무거워져서, 최초의 1갤론당 8펜스라는 의미 없는 세금이 실제 판매가격의 119퍼센트라는 상상하기 힘든 수치에 이르게 되자. 준법정신이 뛰어난 시민마저 '차범죄자'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두운 밤 그림자가 스며들어 창문을 톡톡 두드린다. 소리가 날까 조심하면서 여자가 창문을 열고 돈을 아래로 조심스레 건넨다.. 돈을 받은 그림자는 끈으로 주둥이를 묶은 차가 들어 있는 가죽 주머니 하나를 위로 올려준다, 교환이 이루어지는 동안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거래한 당사자들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미소 짓는다. 마침내 그림자는 사라지고 창문이 닫히며 거래는 종결된다. 이 밀거래 품목은 바로 차였다. 차를 산 여자들은 한동안 가족들을 위한 차를 확보한 것에 만족해하며 침대의 온기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침에 마실 따뜻한 차 한 잔을 생각하면서, 몰래 숨겨두어었던 차가 떨어진 이후로 계속 그리워만 하던 차가 아니던가. 밀수차를 사는 범죄에 대한 징벌이 가볍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달콤한 기대가 두려움보다 더 컸던 것이다. 이런 광경은 18세기 영국에서는 매일 밤 수천곳에서 일어났다. 당시 차는 담배, 알코올, 비단, 소금, 모든 향료와 마찬가지로 통제품이었다. 아런 품목들을 공식 상점이 아닌 다른 곳에서 팔거나 사면 감옥행을 면할 수 없었다.. 차와 같은 무해한 물건이 왜 평범한 사람들을 감옥에 끌려가게 만들었던 것일까? 모든 통제품들은 정부가 수입품에 높은 세금을 매기거나 족점회사가 무역을 지배하여 이윤을 그개화시키기 위해서 높은 가격이 책정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차 밀수는 이들 양쪽 모두의 결과였다.

 

영국인이 나무통에 끓인 차에 높은 세금을 지불하는 동안, 영국 차를 들여오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막대한 이득을 올리고 있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향신료와 비단을 무역하는데 바빠서 차 무역이 잠재적 가능성을 이해하는 데에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1664년 영국 관리가 처음으로 차를 구매했을 당시, 네덜란드는 이미 50년 이상 차를 수입해서 유럽 전역에 팔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 동인도회사가 끼어들면서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17세기 무역에 있어 영국-네덜란드 사이의 긴장은 계속되고 있었고, 영국 정부는 네덜란드에 대항하는 법을 제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장 첫 번째 움직임은 네덜란드 수입품에 세금을 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곧이어 더 극단적인 법이 제정되었으니, 1667년 모든 네덜란드 수입품은 영국 정부에 의해 간단히 불법으로 선언되었다. 한편 영국 동인도회사는 네덜란드와 포르투칼 양쪽과의 극심한 무역전쟁에서 자리를 안정적으로 보자앋을 수 있었고, 아모이(하문)에 중국 교역소를 설치했다. 동인도회사는 1669년 처음으로 아모이로부터 차를 실어 영국으로 보냈다. 동인도회사는 정부의 날인증서와 무역법에 의해 보호받았고, 극동무역의 독점자가 되었다.

초기에 선겭명이 없었음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열광적인 무역이 개시되었다. 초기 몇 십 년 동안 차는 동인도회사의 가장 중요한 수입품이었다. 하지만 독점이니 만큼 가격을 제 마음대로 올렸기 때문에 아주 부유한 사람만이 합법적으로 차를 살 수 있었다. 일반 대중에게는 공식적으로 수입되어 세금이 붙은 차는 구하기 어려운 품목이었으므로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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