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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3

녹차의 종류 차의 종류 마실거리로서의 구분 조선시대에도 고려때와 마찬가지로 다탕과 다유를 마셨다. 다탕은 작설차(잎차)나 떡차를 끓여 마시는 맑은 찻물로 조선왕조실록에도 흔히 나오는데 태종때는 제사에도 [다탕]을 썼다. 김시습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다탕은 조선시대 음다생활의 주류를 이루었다. 질화로 산방은 맑고 고요한데 밤은 길기도 하여 한가로이 등불 돋우며 흙마루에 누웠네 질화로 덕에 나는 더욱 넉넉하고 손님이 오면 또 다탕을 끓이네 다유는 가루차를 뜨거운 물에 휘저어 가루와 함께 마시는 탁한차로 고려시대에 무척 성하였으나, 점차 쇠퇴하여 조선시대에는 문헌과 승려들 간에 혹은 가례때 드물게 이어져왔다. 위의 김시습은 말차도 즐겨마시어이라는 시에서는 「질화로엔 향기로운 이내가 일어나고, 돌솥에선 다유 끓는 소리가.. 2019. 5. 2.
백성들의 차생활 백성들의 차생활 다점은 오늘날의 찻집이다. 골의 백성들이 돈이나 베를 주고 차를 사 먹었던 다점은 술이나 음식 등을 파은 가게와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고려 초엽의 귀족 중심의 사회에서도, 다점은 백성들이 누구나 드나들어 차르 사 마셨던 오늘날의 찻집과 같은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신라때도 토산차가 있었고 군민들이 차를 마셨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점이 있음은 상업의 발달과 더불어 농민의 지위도 향상된 당시에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백성들이 사서 마실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차를 기호음료로 즐겨 마셨다. 헌다 공덕제나 기우제때 신이나 부처께 차를 정성스레 올렸는데, 차는 신명도 좋아한다고 믿어 인간의 염원을 전달하는 매개체였다. 고려의 일반 백성들도 연등회나 그 밖의 일에 영험을 얻고자 부처께 차를 올리고.. 2019. 5. 1.
차문화에 대하여 차문화에 대하여 단군 왕검은 선인 즉 신선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고, 신라의 여섯개 부족의 통치자들도 고조선사람이며 산골짜기에 사는 선인임을 암시하였다. 선이란 사람인과 산산으로 산 사람이라는 뜻으로 산골짜기는 천신이 강림하기에 좋은 곳이며 신의 뜻을 받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초기국가의 선인은 제주이자 통치권이 있는 사람을 뜻했다. 우리 민족의 산악신앙을 볼 수 있다. 신라의 선인은 화랑이기도 하였다. 선인을 숭상하던 진흥왕은 선인들의 풍월도를 일으키기위한 방편으로 화랑을 뽑았은데, 그 중에 우두머리를 나라의 신선, 즉 국선이라하였고, 화랑도를 국선도라고도 하였다. 사선중 세 사람의 이름에는 화랑을 뜻하기도 했던 랑이 붙었으므로 사선은 당신 선인으로도 인식되었던 초기 화랑들이었으며, 이들 중 우두머.. 2019.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