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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녹차의 종류

by An마담 2019. 5. 2.

차의 종류

 

 

 

 

마실거리로서의 구분

 

조선시대에도 고려때와 마찬가지로 다탕과 다유를 마셨다. 다탕은 작설차(잎차)나 떡차를 끓여 마시는 맑은 찻물로 조선왕조실록에도 흔히 나오는데 태종때는 제사에도 [다탕]을 썼다.  김시습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다탕은 조선시대 음다생활의 주류를 이루었다.

 

질화로

 

산방은 맑고 고요한데 밤은 길기도 하여

한가로이 등불 돋우며 흙마루에 누웠네

질화로 덕에 나는 더욱 넉넉하고 

손님이 오면 또 다탕을 끓이네

 

다유는 가루차를 뜨거운 물에 휘저어 가루와 함께 마시는 탁한차로 고려시대에 무척 성하였으나, 점차 쇠퇴하여 조선시대에는 문헌과 승려들 간에 혹은 가례때 드물게 이어져왔다. 위의 김시습은 말차도 즐겨마시어<한적하게 잠을 탐함>이라는 시에서는 「질화로엔 향기로운 이내가 일어나고, 돌솥에선 다유 끓는 소리가 나는구나」라고 하였다.

다유는 차거품이 희고 젖맛이 난다 하여 고려때와 마찬가지로 젖이나 눈 혹은 흰색 꽃에 비유하였다.  「설유 「빙설의 빛 「향유 「백화 「법유 라고 했으며, 구봉령은 다탕을 마시고 또 계속해서  「옥유」도 마시었다.  「화유」라고 한초의는 추사가 손수 끓인 뇌협차의  「설유」를 나눠 마시기도 하였다. 다유로 마실 차는 어린 차싹이라야 맛도 좋고 고운 가루가 나으모 고급 잎차나 덩이차를 쓴다.

 

잎차

 

잎차(작설차)는 날잎을 시들리며 발효시켜 그대로 말린 일쇄차, 발효후 찌거나 덖어 말린 것(반발효 익은 차), 살짝 덖거나 쪄서 도중 발효 시킨 것의 세가지 발효차가 있으며, 전연 발효시키지 않은 녹차가 있다. 발효차는 다탕을 우리면 등황색이나 황색이며 물에 넣어 끓이면 좀 더 진해져서 붉은 색이 난다.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도 대개 발효차를 즐겨 마셨다. 붉은 발효차를 노을에 비유하여  「하」라 하였는데, 김시습의 소설  「금오신화」에서 박생이 용궁잔치에 초대받고 지은 글에,  「유하가 찻잔에 떠 있네」라 하였고, 16세기  「백담선생문집」 중의 다시에는  「연하: 안개와 노을」이 입안을 시원케 한다.고 했다.  

잎녹차는 어린 세차를 따서 약용으로 쓰기 위함이거나. 말차로 만들어 다유로 마시기 위해 간혹 만들었는데  「옥로」혹은 「청연」이란 글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녹차」란 말이 최초로 쓰인 것은 19세기 초이다. 그 전에 일본의 녹차를  「청명」이라일컬었고, 중국 녹차는  「청차」라고 하였다.

 

다산의 차

 

다산이 즐겨 마신 잎차는, 발효시킨 후 일광에 널어 말리거나 온돌이나 배로에 은근히 말린 차였던 것같다. 그는 유배가 끝나고 고향에 돌아와 있을 때 강진의 제자들이 그가 사는 두릉을 방문하였는데, 그때 문답한 내용에는 "올해 세작(이른차)을 따서 널어 말렸느냐"라는 대목이 있다. 다산이 강진에 있을 때 제자들에게 가르친 고급차의 제다법은 가마솥에 덖어 볶어 말리는 부초차가 아니라 글에서는  「배로에 쬐고 말려 법대로 만드니 우러난 찻물은 색이 밝으리」하여 널어 말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을 피운 열기로도 말렸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의 세작 일쇄차는 정동 황차와 같은 반발효차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말기의 한 기록에 의하면 '해남에는 옛부터 황차가 있는데 오직 정약용이 알뿐이고 정차라 한다'고 한다. 1930년 경에 다산 초당과 가까운 만덕사의 주지가 만든 작설차도 다탕이 붉었으며 당시의 일본 녹차와는 다른 향기와 맛이 숨어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차는 대개 솥에 끓여서 마셨는데 녹차는 끓이면 매우 쓰고 떫어 보관과 맛내기가 수월한 발효차를 즐겨마신 것이다.

 

칠불선원의 차

 

화개동 칠불선원에서 좌선하는 승려들은 항상 늦게 쇤잎(노엽)을 따다가 널어 말렸다. 섶으로 불을 피워 솥에 끓였는데 마치 나물을 삶은것 같아서 다탕은 진하고 탁하며 적색이고 맛이 매우 쓰고 떫다.

다탕의 색이 붉은 색이라는 것으로 보아, 찻잎을 딴 즉시 널어 말리지 않고 볕이나 온돌에서 발효과정을 거친 일쇄 황차임을 알 수 있다.

 

정동 황차

 

경남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에 사는 정학녀할며니와 다른 여러 할머니들이 만든 발효차이다. 찻잎을 따서 먼저 온돌방에 발효시킨 후 손으로 싹싹 비벼 그늘에 말린다. 많은 차를 비빌 때는 멍석에 비비며 대개 그날 중으로 제다를 끝낸다. 세차와 중차가 있다.

 

금강곡 황차

 

황차는 다탕이 누런 약발효차이다.  「황차가 금강곡에서 나며 일명 장군차라는 기록이 있는데 장군차란 고려 충렬왕이 그곳의 야생 산차나무를 장군나무」라 부른 데서 유래한 말이다.

누느스름한 주황색을 물들일때 당시에 마시던 황차를 썼음을 알 수 있다. 겨울 청차와 황차를 꼽았는데 강발효나 녹차는 아이었던 것 같다

 

찌거나 덖은 차

차싹을 찌는 제다방법은 고려 초의 토산차인 뇌원차(고급 단차)를 만들때부터 있었으며 비슷한 방법으로 찻잎을 끓는 물에 데쳐서 말려 보관하기도 했을 것이다. 찌거나 데친 차를 말릴 때 비가 오거나 많은 양의 차를 말릴 때는 약한 불에 말리게 되면서 솥에 덖어 볶아 말리었고 독특한 맛도 즐기게 된 것이다.

찻잎을 찌거나 데쳐서 말리면 개운한 맛이 덜하므로 찐 차의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시루에 살짝 찐 후 비비며 다시 솥에 덖어 건조시키기도 하였다.

 

녹차

 

오늘날 우려 마시는 잎녹차가 성해진 것은 중국 다문화를 상당히 수용한 19세기 초엽부터이다. 초의 <다신전>에는 솥에 덖어 말리는 녹차의 제다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마른 잎차의 취색:파란색)을 중요시했다. 추사는 "옥같은 차를 달인다.."고 했으며 이상적은 중구일에 "향기로운 샘물로 녹차를 끓이네'라고 했다. 1930년대에는 일본인의 지도로 녹차를 상당히 많이 만들었고 당시에 화엄사에는 중엽을 쪄서 다시 솥에 덖고 비벼 말린 녹차가 있었다.

 

구례차

 

차를 시들려 발효시킨 후 가마솥에 덖으며 비비기를 3~5회 한 후, 볶아서 마무리한 반 발효 익은 차로 화엄사, 쌍계사, 대흥사. 화개면에서 만들었다.

 

떡차

 

떡차는 찻잎을 쪄서 절구에 찧은 후 둥글납작한 덩어리로 만든 차이다..

떡차는 만들어서 말리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편이나 운반과 보관이 매우 쉽고 끓여 마시기에 편리하여, 조선시대에 즐겨 마시어온 우리의 독특한 차였다. 떡차는 단차 혹은 차떡이라고도 하였으며 그냥  「차」라고 불리었다. 동그란 떡모양 가운데에 구멍을 뚫었으며 돈차, 꼬쟁이에 꿰어 말리므로 곶차, 벼리(끈)에 꿰었으므로 벼리차:강차 라고도 불렀다. 떡차는 대개 첫물차를 이른 봄에 먼저 딴 후에, 잎이 피기를 기다렸다가 두물차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산의 '다신계절목'에는 곡우:(양력 4월 20일,21일)날 눈차를 따서 배로에 말려 엽차 한근을 만들고 입하(양력 5월5일,6일경)전에 늦차를 따서떡차 2근을 만든다'고 한 내용으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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