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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다구의 특징과 종류

by An마담 2019. 4. 30.

다구의 특징과 종류

 

 

 

고려시대에는 팔관회, 연등회, 공거재, 기우제 및 왕과 신하의 회의, 연회, 사신맞이, 책봉의식을 포함한 왕실의 행사  등의 중대한 국가행사 땡 의례로서 차를 올리거나 마시었으므로 그에 따르는 제반 다구는 어떤 그릇보다고 중요하였다. 고려시대의 다구는 최고의 품질과 멋을 지녔고 귀족적이며 몹시 아름다원ㅆ다.  중국의 모방도 없지 않았으나 다구의 생김새와 만드는 기법이 매우 독창적이었다. 1123년에 송도를 다녀간 송나라의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는 

 

고려인들은 차마시기를 매우 좋아하여 다구를 더욱 잘 만드는데 금꽃이 있는 검은잔, 청자 작은 찻잔, 은하로, 세발차솥 등이다.

라고 한 것으로 보아 화려하고 품격이 가주어진 차도구를 썼으며 아울러 찻그릇을 마늗는 기술이 고려 도자기 발달에 촉매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도경]에 의하면 고려인들은 도자기의 색깔이 푸른 것을 비색이라 했고 조정의 연회때 쓰는 그릇은 대부분 금칠한 것을 썼으며 혹 은으로 된 것도 있으나 푸른색 도기를 귀하게 여겼다고 하였으므로 고려때도 청자를 매우 귀중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청자에 관해서는 송나라의 유명한 태평노인도 당시의 송청자를 제쳐두고 고려청자의 신비스런 색은 천하 제일이라고 했고 일본의 어떤 학자는 만약 신에게 도달하는 길을 묻는다면 지금 자는 한마디로 '고려도기를 통하여'라고 대답하겠다.고 할 정도로 찬사를 보냈다.. 고려청자는 은은하면서 맑고 명랑한 비색, 조각도의 힘찬 선을 지니고 기물과 일체가 된 시적인 운치가 있는 상가문양, 유연하고 유려한 선의 흐름을 지닌 형태, 한두 점 엑센트로 강한색을 쓰는 이외에 모든 색을 담담하게 구사하는 등이 그 특색이며 아름다움이다.

 

오늘날 남아 전해진 고려 다구의 대부분은 청자이며 백자가 드물게 있고 청동으로 된 것과 쇠, 돌로 된 것 등도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궁실에서 쓰는 야외용 다구도 발달하였다. 왕이나 태자의 행차시나 태후의 책봉시에 다군사가 운반하는 화로나 교상과 물주전자 등이 들고 다니기에 좋도록 되어 있었고, 솥등은 두 개의 고리에 나무를 꿰어 짊어지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이때는 잘 깨어지지 않는 은그릇도 많이 사용한 것 같다. 

 

 

고려다구의 종류

 

고려의 다구 중에서 재를 올리거나 제사지낼때와 부처께 올리는 데 쓰였던 다기와 귀족용 찻그릇은 오늘날까지 적지 않게 남아 전해지고 있다. 의례용 용구는 그 자체가 종교적 숭배물이 되어 별도로 보관되었고, 또 귀족의 찻그릇등은 묘에도 묻기도 했다 일반 서민들이 쓰던 다구나 금 은 등의 그릇은 600년 내지 천년을 쓰이면서 잘 보존되어야 하므로 유물이 많지 않다.

다구는 사용목적에 따라 신명이나 부처께 헌다용, 군신진다용, 일상 음다용으로 크게 구분 할 수 있다. 또한 다구의 종류도 찻그릇, 다병, 탕관, 차맷돌 , 다술 등이 있다.  

찻그릇

 

찻그릇이라 함은 차를 담아 마시는 찻잔 종류이다.

가장 많이 쓰인것은 구와 완인데 그 용도가 대체로 구별되어 있었다.

즉 다구에는 다유를 마시었고 다완에는 주로 다탕을 마셨다. 구에는 찻가루를 넣고 끓인 물을 부어 휘저어 점다하였고 잎차는 완에 마셨음을 알 수 있다. 원천석은 식후의 차한잔은 특별히 맛이 좋고, 취한 뒤의 석잔은 가장 자랑할 만하구나 하여 식후에는 다구에 진한 차 한잔을 마시고 술마신 뒤에는 다완에 다탕을 여러 잔 마셨다. 그러나 고려후기에는 혼동하여 쓰인것으로 의례가 아닌 일상생활에서는 겸하여 썼을 경우도 있다

 

왕께 차를 올리는 중형주대의에 의하면 다방참상원이 협호: 차 끓이는 칸)에서 차를 들고 들어와서 내시가 뚜껑을 벗기고 집례가 어전에 올라가서 절하고 차 들기를 권하고 내려왔으며 신하에게도 진다하였는데 차를 단에 담아 들고가므로 차가 쏟아지지 않게 만든 모양의 잔과 잔받침을 사용했을 것이며 잔뚜껑은 차의 향기가 달아나지 않고 식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서궁은 고려도경에서 사신들에게 차를 들고 올 때도 연꽃모양의 은뚜껑으로 덮었다고 하였다. 당시에 술을 담던 반잔은 잔이 깊고 잔입이 오므라들었으며 잔의 용량이 적고 굽이 높다고 하여 찻잔과 구분되었다. 

 

일상용 다구는 헌다나 진다용이 아닌 개인용 고급 찻잔으로 서궁은 고려도경에서 [청자 작은 구]를 언급하였다..

다탕겸용의 구의 안벽에는 흔히 학과 구름, 국화, 당초등이 그려져 있고, 잔입술 가까이 선병띠나 풀무늬띠가 들려져 있는 것이 많다. 큰 다구는 여염집의 다례때 차를 담아 돌려가며 마시지 않았나 추측되며 앞의 이연종의 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큰 구에는 차를 넣고 탕수를 부어 바로 점다하여 마시기도 하였던 것 같다.

 

다병

 

병은 물이나 술을 담는 용기의 몸체가 단지모양인 것을 말한다. 고려말 이승인은 다병에서는 소나무 바람이 비에 섞여 소리 나는구나 라고 하여 차끓이는 탕관을 뜻했다.

 

끓이는 용기

정은 솥아래 긴 다리가 셋 있어 화덕이 없어도 어디서나 쉽게 끓일 수 있는 용기이다 이규보가 칠병을 선물받고 쓴글에 다리 긴 솥 보다 안전하다고 했으며 다사나은 아언각비에서 정은 발이 셋이고 귀가 둘인 보배로운 그릇이라고 하였다. 선인들은 돌로 만든 석정에서 찻물이 끓는 소리 듣기를 즐겼다.

차와 물을 끓이는 도구로 부리가 있는 단지 모양의 병을 썼다. 오늘날의 주전자 모양으로 쇠나 구리로 만들었다.

 

 

센불로 강한 쇠 녹여내어 이 같이 단단한 것 만들었구나

긴 주둥이는 학이 우러러 돌아보는 듯 하고 몸체는 개구리가 화가 나 불룩한 듯 하네

손잡이는 뱀꼬리처럼 꼬부라졌고 목에는 물오리 머리같이 볼록하며 오목하기는 입 좁은 항아리 같지만 다리 긴 솥보다 안전하다. 내 문단에 재주가 없으니 헛되이 문단의 병만 얻어 오직 차 찾는 것만 생각하고 이미 술꾼되는 것을 그만 두었다네. 비록 양자강의 물은 없지만 다행히 건계의 차는 있어 차달이려고 사내종을 불러서 차가운 우물물 길어오게 하네

절화로에 손수 달이니 밤 누각에 등불 켜놓은 듯 처음에는 마치 목멘 소리 같더니 점점 생황소리 길게 나네

삼메의 솜씨 이미 익었으니 일곱 잔의 맛에 어떻게 비교가 되랴

이로써 낙을 삼기에 넉넉한데 어찌 날마다 곤드레 만드레 취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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