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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차문화에 대하여

by An마담 2019. 4. 30.

차문화에 대하여

 

 

 

 

 

단군 왕검은 선인 즉 신선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고, 신라의 여섯개 부족의 통치자들도 고조선사람이며 산골짜기에 사는 선인임을 암시하였다.  선이란 사람인과 산산으로 산 사람이라는 뜻으로 산골짜기는 천신이 강림하기에 좋은 곳이며 신의 뜻을 받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초기국가의 선인은 제주이자 통치권이 있는 사람을 뜻했다. 우리 민족의 산악신앙을 볼 수 있다. 신라의 선인은 화랑이기도 하였다. 선인을 숭상하던 진흥왕은 선인들의 풍월도를 일으키기위한 방편으로 화랑을 뽑았은데, 그 중에 우두머리를 나라의 신선, 즉 국선이라하였고, 화랑도를 국선도라고도 하였다. 사선중 세 사람의 이름에는 화랑을 뜻하기도 했던 랑이 붙었으므로 사선은 당신 선인으로도 인식되었던 초기 화랑들이었으며, 이들 중 우두머리는 영량이었던 것이다.

 

 

차를 마신 계층

 

신라시대에 차를 마신 계층은 선인과 화랑들뿐만 아니라 왕과 승려및 학자, 귀족층과 선비들이 포함되어 일반 백성들도 차를 마셨다. 

고요히 선옹을 대접하지 않으며 한가로이 우객을 맞아야 할 것이거늘, 뜻밖에 신선들끼리 주고받는 선물이 외람되이 평범한 선비에게 내릴 것을 어찌 기대하였겠습니까

최치원이 귀한 차를 받고 감사하는 글이다.

 

선옹은 선을 하는 승려를 말하고 우객은 신선을 말하므로 승려와 신선들이 항상 좋은 차를 즐겨 마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의 태조는 931년에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경순왕에게 안장을 얹은 말과 비단류를 선사하고 백관들에게는 비단을 , 군인에게는 차와 모자종유를, 승려에게는 차와 향을 각기 차등있게 하사하였다.

 

여기서 군인은 군인출신의 민간인이거나 군인과 민간인의 뜻인데, 군민을 승려보다 앞에 기록하였고 [차등을 두었다]는 글로 보아 군인이었던 민간인, 즉 화랑의 무리인것으로 짐작된다.  화랑은 진골귀족이지만 그를 따르는 무리 즉, 낭도들은 경중 사는 하금 귀족이나 선비, 그리고 일반 평인의 자제로 구성되었다. 경순왕은 이로부터 4년뒤 군시니회의의 결정에 따라 나라를 고령 합병하였는데 그 전에 왕건은 군민과 승려에게 필요한 차를 선물함으로써 신라인의 환시을 사고자 하였던 것이다.

일찍이 차를 마셨던 가야를 합병한 신라는 일반 백성들도 가야의 백성들과 더불어 차를 기호음료로 마셨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외양이 깨끗한 한 동자가 공손히 차와 염주를 받들과 궁전 서쪽 작은 문에서 나타났다. 월며응ㄴ 이것이 내궁의 사자라 했고, 왕은 스님의 종자라 했으나 서로 알아보니 모두아니었다. 왕은 매우 이상히 여겨 사람들을 시켜 뒤를 좇게 하니 동자는 내원탑안으로 숨어버리고 차와 염주는 남쪽 벽화 미를상 앞에 있었다.

 

이와 같이 월명의 지극한 덕과 지성이 미를보살을 감동시켰다.  여기서 동자가 차와 염주를 가지고 와서 미륵상앞에 두고 탑안에 수머 버렸다함은 미를부처에게 차를 올리고 정성껏 염원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어 미륵부처와 차의 연관성을 짐작할 수 있다, 승려 화랑인 충담도 경덕왕24년에 삼화령의 미륵부처에게 차를 올렸고 법주사의 대형 돌다기도 미륵부처께 차를 올리는 신라의 찻잔이다.

 

 

<의식다례 찻잔과 회음례>

 

신라시대에도 의례에 차를 흔히 썼다. 문무왕때 김수로왕의 시제에 차를 올린 것은 종묘다례라 볼 수 있으며, 충담이 사짇날과 중구일에 미륵부처께 차를 올린 것도 다례이다.

의식다례에 쓰인 찻그릇으로 언정영 찻그릇은 잔입술 직경이 16.8cm로 1인용 찻잔이 아닌 큰잔이다. 용량이 큰 것으로 보아 차를 담아 어떤 의식을 치룬 후 그 차를 참석한 사람들이 나누어 마시지 않았나 짐작한다.

용왕 찻그릇은 기우제를 지낼 때 쓰던 의식용 찻잔인 것 같다. 그릇안에는 신심용왕이라 쓰여 있는데, 이는 용왕께 정성스레이 바친다.는 뜻으로 기우제때 사용된 것 같다.

 

 

고려초 숙종9년에 왕이 차를 하사하여 기우제를 지내게 하였으며, 15세기에 쓴 용재총화에는 기우제를 지내는 절차에 종묘와 오방용신에게 제사지내고 따로 용제를 설치하여 도류로 하여금 용왕경을 외우게 한 것으로 보아, 용왕과 기우제와 차는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찻그릇도 직경이 16.3cm로 용량이 큰편이고, 굽이 높아 두 손으로 감싸쥐면 안정되게 잡을 수 있다. 

회음례란 차나 술을 하나의 큰 잔에 담아 돌아가며 마시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에 예문관과 사헌부등에서는 한 말이나 들어가는 술잔에 술을 담아 돌려 마셨고 여염집에서도 풍류의 결사나 시사, 계의 구성원들이 모이면 우의를 돈독하게 하기 윟 연종의 술을 담아 연대에 구멍을 뚫어 마치 코끼리 코처럼 굽혀 들고 마셨다 한다. 귀한손님이 왔을 때 한 개의 잔을 몇 사람이 돌려가며 마시는 풍속을 촉구라고 하여 오늘날도 전해지고 있으며 또 예로부터 우리의 풍습에 한솥밥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을 정해두기도 하여 한 그릇의 음식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뜻을 함께 한다는 데에 큰 의미를 두었던 것이다. 차사발을 돌려마시는 회음례는 아마도 위아래와 질서를 엄격히 지켰을 것으로 짐작되며 여기에서 차례걸음의 순서로 질서있게 일을 진행함, 차근차근, 차례지다란 말이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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