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의세계7

차와 아편전쟁 18세기가 끝날 무렵, 영국은 세계 최대의 상 세력과 식민 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그 원동력의 하나는 동인도 회사가 아시아에서 이룬 거대한 성공 덕분이었고, 그중에서도 차 무역은 핵심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차 무역은 제국의 건설을 도운 한편 예기치 못하게 제국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아메리카 식민지의 상실이다.. 그리고 차는 중국 무역에서 발생한 새로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했다. 좋은 소식은, 동인도 회사의 효율적인 상업 활동 덕분에 영국에서 차의 소비가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이었다. 1730년에서 1790년 사이에 차 수입량은 연간 100만 파운드(약450톤)에서 거의 2천만 파운드(약 9,000톤)로 늘어났다. 이러한 사업의 확장은 막대한 세수의 원천이.. 2020. 7. 16.
영국 차 이야기 아주 작은 찻잎 한 장도 나는 훔치지 않았다. 나는 살해한 적도 없다는 것을 신에게 호소하노니, 한쪽 저울에는 차를 , 다른 쪽에는 인간의 피를 놓고서 그리고 죄 없는 형제를 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밀수 갱단의 일원으로 전해지는 로버트 느로트만의 묘비에서. 그는 1765년 3월 24일 해안가에서 무참히 살해되었다. 성 앤드루스 교회, 킨슨, 번머스, 영국- 영국의 차 마시는 습관의 진정한 탄생지는 커피하우스였다. 하지만 커피하우스의 성공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커피하우스의 자극적인 환경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정부는 이들을 세금을 더 많이 뽑아낼 수입원으로 주목하게 되었다. 당시 영국 왕조는 크롬웰 이후의 행정을 지탱할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16.. 2020. 7. 14.
차의 광고 1660년대 영국에서 스튜어트 왕가에 차를 남품하는 가게 주인인 토마스 가웨이는 유명한 차 상인었다. 그는 영국에서 최초로현대적 방법, 즉 광고를 이용하여 차를 전파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가웨이는 판매를 위한 차를 갖고 있었고 그것이 매우 맛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는 최신 음교가 갖고 있는 놀랄만한 효능을 열거한 광고 전단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가 주장한 끽다의 효능 중에는 성욕의 고취와 가벼운 구토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마케팅 이론은 광고를 이용하면 사람들이 보게 돌 것이고, 그러면 차를 살 거라는 단순한 원리를 따른 것이었다. 영국에서 차가 매우 짧은 시기에 자리 잡은 것을 생각하면 가웨이가 옳았을 수도 있다. 가웨이는 1670년 경 런던의 여러 지역에서 장사를 시작했으며, 1666년 .. 2020. 7. 12.
차Cha와 차이Chai 중국인들이 '차 Cha'라고 부르고, 다 라에서는 '테이 Tay' 또는 '테 Te'라고 하는 모든 의사가 인정한 훌륭한 중국 음료가 런던의 왕립 거래소 근처에 있는 스위팅 렌츠의(술탄 여왕의 머리) 커피하우스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최초의 차 신문광고, 1658년 9월 30일(정치 통신)- 독일어의 티 Tea라는 영어 단어와 그 이외의 이탈리아 어의 테 Te, 독일어의 테 Tee, 불어의 테 the 같은 유럽어의 어원은 중국어이다.. 그리고 이란, 러시아, 인도, 일본, 아랍 국가들과 놀랍게도 푸르투 칼에서는 차를 가리키는 단어로 차 Chai를 사용한다 후자인 차이는 인도에서 홍차에 우유, 설탕과 카르다몸, 계피, 말린 후추, 정향, 생강등을 섞어 만든 흔한 음료를 뜻하며, 이러한 음료는 최근 서구에서 .. 2020. 7. 11.
일본의 차의 역사 "1591년 2월 28일 일본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많은 존경을 받는 일흔 살의 노인이 의식적인 자살인 활복을 했다. 그는 일본의 통치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 친구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죽음의 시를 지은 후 배에 칼을 꽂았다. "칠순 인생, 내가 이 칼을 잡고 있는 순간 부처도, 조사도 없다"라는 시를 남긴 사람은 센노 리큐(1522~1591)로, 후대에 일본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는 일본의 위대한 차의 대가이자. 일본인의 의식에 차와 선을 영원히 새긴 인물이었다. 일본에 차를 소개한 첫 번째 승려- 센노 리큐 이전 수세기 동안, 일본의 승려와 학자들은 중국에 건너가 여행했고 건축 설계, 예술 기법, 정부 형태 등 중국적인 개념과 관념을 갖고 돌아왔다. 당시 중국은 동아시아 문화.. 2020. 7. 10.
차의 변천사 2 의학자인 화타華陀는 에서 차를 오랫동안 마시면 생각이 깊어진다고 기록했으며, 유교 경전의 집대성인 에서도 차를 '이을 끓여서 만드는음료'라고 정의하고 있다. 명사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만든 5세기의 책 에는 전한의 혜제 惠帝가 차를 사랑해서 그의 친구들에게 자주 권하였지만 "그들은 그것이 너무 써서, 몸이 안좋다는 핑계를 대고 정중히 사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5세기에 차는 약효가 있는 음료이자 일상품으로 거래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차를 끓여서 다른 재료들과 섞어서 탕처럼 마셨다. 이렇게 끽다는 중국에서 대중화되었으며, 오늘날처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음료로 만든 곳 역시 중국이었다. 그러나 차나무가 어느 곳에서 맨 처음 기원했는지에 댛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오랫동안 중국이라고알려져 있었지만 .. 2020. 7. 10.
차의 변천사 차가 뭔지도 모르는 바다의 야만인들이 아시아의 해변가에 나타났다. 그들을 이곳까지 오게 한 것은 계피와 육두구, 정향같은 이국적인 향신료의 향과 비단과 명주의 매끄러운 감촉이었다. 요란하게 등장한 야만인들은 총소리와 화약 냄새로 아시아 전역을 뒤흔들었다. 연이어 시끄러운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아시아인들의 평온한 일상생활을 방해했다. 유럽인들은 그렇게 아시아의 역사에 등장했다. 스페인,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 같은 서유럽 국가들돠 아시아 국가들과의 접촉은 거의 역사적인 트라우마를 일으킬 정도로 폭력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세계 경제 질서에서 본다면 큰 변화의 시작이기도 했다. 유럽인들은 미개한 아시아를 약탈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으며, 그들에게 아시아란 곧 부에 대한 약속을 의미했다. 이렇게 그들은 인간.. 2020.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