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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차의 변천사 2

by An마담 2020. 7. 10.

차의 변천사 2

 

의학자인 화타華陀는 <식론食論>에서 차를 오랫동안 마시면 생각이 깊어진다고 기록했으며, 유교 경전의 집대성인 <이아雅>에서도 차를 '이을 끓여서 만드는음료'라고 정의하고 있다. 명사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만든 5세기의 책 <세설신어語>에는 전한의 혜제 帝가 차를 사랑해서

그의 친구들에게 자주 권하였지만 "그들은 그것이 너무 써서, 몸이 안좋다는 핑계를 대고 정중히 사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5세기에 차는 약효가 있는 음료이자 일상품으로 거래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차를 끓여서 다른 재료들과 섞어서 탕처럼  마셨다. 이렇게 끽다는 중국에서 대중화되었으며, 오늘날처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음료로 만든 곳 역시 중국이었다. 그러나 차나무가 어느 곳에서 맨 처음 기원했는지에 댛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오랫동안 중국이라고알려져 있었지만 인도의 아삼이나 동남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차나무가 발견 되면서 중국 기원론에 혼란이 빚어졌다. 중국차나무는 잎이 작은 소엽종이지만 운남 등지에서 발견된 오래된 차나무들은 인도 아삼처럼 대엽동이다. 심지어 중국에마저 차나무가 인도에서 온 것이라는 전설이 남아있다. 신농 전설에서 한참 후대인 후한 시대의 전설에는 서한의 감로甘露 연간(기원전53-49)에 감로사의 승려이자 학자인 보혜선사 오리진이 인도에 불교를 공부하러 갔다가 일곱개의 차나무를 갖고 돌아와 사천성의 몽정산에 심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차의 기원은 인도가 된다.

실제로 인도 동북부의 원주민은 몇백 년 어쩌면 몇천년 일지 모르는 세월에 걸쳐서 차에 익숙한 삶을 살았다. 차의 역사에는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 지역에서는 차나무잎을 음료가 아니라 음식으로 만들어서 오랫동안 먹어왔다. 오늘날까지도 기름, 소금, 마늘, 참깨와 함께 절이거나 물고기 또는 동물의 지방과 섞어서 먹고 있다.

정글에 거주하던 사냥꾼-채집자들이 농경문화의 시작고 함께 이웃한 중국 주민에게 차나무 씨앗과 관습을 퍼트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역사적 문서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설명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하여튼 월리엄 유커스는 1935년 그의 백과사전적 연구서 <차에 대한 모든것>에서 차나무는 수천 년 동안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 간의 국경지역에 이미 존재했다고 적고 있다. 순수하게 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도, 대자연의 초기 차 농장은 인도 북동부와 중국 남부(사천성, 운남성지역) 라오스 북부. 미얀마, 타이 등으 구릉 지역에서 발견된다. 인도 정글의 부족민 또는 중국의 약사 중 누가 먼저 원시적인 차 한 잔을 끓였는지 현대인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재배 작물로서의 차는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것, 그리고 음료로서 차의 역사는 적어도 이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차는 처음으로 약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고대 중국의 약초사와 치료사 들은 차를 도가사상의 관점에서 보았다. 그들은 차를 단순한 치료약에서 신성한 음료이자 불로장생의 영약 같은 천상의 존재로 끌어올렸다. 도가家는 중국이 혼란스러웠던 시기인 전국시대(기원전480~221)때 시작된 사상이다. 제후들은 2세기 이상 군대를 조직하고 새로운 무기를 만들로 이웃 국가들을 침입하여 서로 처절하게 싸웠으며 끊임없이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진나라가 최후에 다른 제후국들은 평정하고 기원전 221년 최초로 통일 중국을 만들었다. 도교 이념은 부분적으로 그 시대의 불안정하고 파괴적인 분위기에 대항하는 반동으로 발전되었다. 세상사에 환멸을 느낀 도의 신봉자들은 신비주의와 개인적 영적 수행에서 피난처를 발견했다. 그들은 음양의 이치에 따라 살고 자연과 우주의 조화를 구하며, 삶의 흐름에 대항하기보다 몸을 맡기는 무위의 삶을 추구했다. 태초으 고요함과 만물의 조화로의 위대한 회귀는 수행과 깨달음을 통하여 달성되었다. 1906년 오카쿠라 텐신은< 차의 책>에서 일본 다도에서 이런 사상을 발견했고 이렇게 쓰고 있다. "다도는 가면을 쓴 도교이다." 불사으 영혼이라는 개념은 도교사상의 자연스런 연장선이다. 도교 연단술의 중심과제는 이 불사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사들은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영혼이 불사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육체적으로 잘 사는 것이 영생으 중심적 요소라고 믿었다. 건강을 위해서 정신과 육체, 영혼을 통합하는 고대 도교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중국 의학의 주요한 기반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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