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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일본의 차의 역사

by An마담 2020. 7. 10.

일본의 차의 역사

 

"1591년 2월 28일 일본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많은 존경을 받는 일흔 살의 노인이 의식적인 자살인 활복을 했다. 그는 일본의 통치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 친구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죽음의 시를 지은 후 배에 칼을 꽂았다.  "칠순 인생, 내가 이  칼을 잡고 있는 순간 부처도, 조사도 없다"라는 시를 남긴 사람은 센노 리큐(1522~1591)로, 후대에 일본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는 일본의 위대한 차의 대가이자. 일본인의 의식에 차와 선을 영원히 새긴 인물이었다. 

일본에 차를 소개한 첫 번째 승려- 센노 리큐 이전 수세기 동안, 일본의 승려와 학자들은 중국에 건너가 여행했고 건축 설계, 예술 기법, 정부 형태 등 중국적인 개념과 관념을 갖고 돌아왔다. 당시 중국은 동아시아 문화의 중심국이었으며 변방에 불과한 일본은 중국 문화를 숭상했다. 중국에서 유학한 승려들은 불교와 차뿐만 아니라 중국의 절에서 일반적으로 수행되던 다례 역시 배워서 돌아왔다. 일본에 상륙한 첫 번째 차는 병차 또는 전차의 형태였다. 종교적 경로를 통해 일본에 처음 차가 소개되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주로 절에서만 사용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귀족사회로 퍼져나갔다. 불자였던 쇼 무천 황(聖武天皇)(701~756)은 황궁에 다원을 만들고 그의 연회에 차를 포함시켜 차의 대중화에 공헌했다.

당시 사용된 차는 둥근 형태의 긴압차로, 일본ㄴ에서는 단차茶라고 알려진 것이었다. 단차는 당나라 때 일반적인 차로, 부수어서 곱게 갈아 뜨거운 물에 넣어 소금과 함께 양념을 가미해서 국처럼 끓여서 마셨다. 

에이사이가 상류층과 교류하며 선을 전차시키고 귀족에게 다례를 침투시킨 것에 반해, 에이존은 일반 민중에게 차를 전파했다. 그 결과 두 가지 형태의 음다법이 동시에 전개되었다. 상류층의 사치스러운 다회는 비싼 중국 다기를 자랑하는 데 중점을 둔 사교행사에 가까웠다. 반면에 승려와 민중의 소박한 차는 일상생활에서 정신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극단적인 두 개의 다도는 점차 사무라이(무사계급) 사이에 서서히 녹아들어 가다. 신흥 무사 계급은 권위를 원했고, 그 수단으로써 다회의 사교 기능을 이용했다. 전투 집단인 사무라이들은 궁중에서 신봉되고 있던 보수적인 불교(전태종) 보다 금욕적인 선종의 형식과 교리를 선호했다. 선종의 승려들은 황실이 아니라 쇼군들에게 중요한 조언자가 되어 책사나 문화 담당관 역할을 했다. 권위를 잃어가는 황실에 반해 쇼군 정권은 점점 더 영향력이 커졌고 선불교와 함께 차문화 역시 더욱더 융성해졌다. 장군들은 전투에 승려를 동반했다. 규정된 의례에 따라서 선승이 차를 대접하는 이동 다실은 연 이은 전투 중에 잠시 후퇴하기 위한 좋은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사무라이들은 무로마치 시대代(1338~1573)의 불안정한 사회 상황 하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도구로 다회를 개최했다. 원래 선사의 서재였던 서원은 거대하고 형식적인 연회장으로 변했고, 사무라이들의 다회를 위한 전통적인 공간이 되었다. 선승들은 주인이 소장한 예술작품과 다기의 배치를 정하며 주인에게 차의 맛과 문화의 궁금증에 대해 조언하기 위해 고용되었다. 그들은 다회에 나아가 방의 장식, 다기의 배치, 꽂꽂이의 규칙을 정리하고 기록했는데, 대부분 중국에서 가지고 들어온 규범에 기초하였다. 아처럼 선문화는 무사계급의 사교문화와 결합되어, 선의 대가는 차의 대가가 외었다.

 

쥬코와 죠우- 이런 차의 대가 중 한 사람이 바로 무라타 쥬코(1423~1502)이다. 전직 노름꾼에서 선승이 된 쥬코는 차를 준비하고 마시며, 다기를 배치하고 가구를 선택하는 다회를 사교행사가 아닌 불자의 길이며 일상생활 속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도구로 보았다.. 그의 공헌으로 다회는 다도, 즉 차의 도가 되었다. 그는 화려한 사원(쇼인)풍의 다실 대신 간소한 초암을, 화려한 중국의 다기 대신 소박한 일본의 다기를 선호했사. 그의 영향으로 다도는 중국의 다기 대신 소박한 다기를 선호했다. 그의 영향으로 다도는 중국 수입품에서 진정한 일본식 차노유茶の湯, 말 그대로 '차를 위한 뜨거운 물'이라는 방식으로 진화되었다. 타케노 죠우武野紹鴎(1502~1555)는 쥬코의 이상을 따라

(와비)라는 개념을 도이바여 다도의 양식을 더욱 발전시켰다. 와비는 원시적인 소박함, 마음의 진실함과 불완전의 미를 탐미하는 것으로, 선과 더불어 일본 미의식의 중심적 요소이다. 그는 다실은 작고 소박해야 한다고 생가하여 4조 반 형태의 다다미로 된 다실을 고안했다. 짚으로 만든 돗자리인 다다미는 넓이가 약 1.8제곱미터로 규격화되어 있었다. 일본은 쥬코와 죠우 이후 세 번째 그리고 가장 위대한 다인을 기다려야 했다. 정신적, 미학적 세련됨을 극대화시킨, 차노유를 국민적 예술 형식으로 변화시킨 인물은 바로 다도의 대가이자, 최초의 다사(차선생)인 센노 리큐千利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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