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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영국의 차 사건

by An마담 2020. 7. 14.

 

영국 차 사건

 

 

 

높은 세금과 비싼 가격은 밀수 사업을 

 유행시 키기에 가장 완벽한 조건이었다. 18세기 초만 해도 합법적인 수입 차 2만 파운드가 영국으로 들어왔지만, 18세기 말에는 한 해에 2천만 파운드에 달했다. 영국에서 소비되는 모든 차의 절반 또는 삼분의 2가 밀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천만 파운드에서 천오백만 파운드의 밀수한 차가 영국 가정에서 소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밀무역은 산적과 깡패 같은 사람들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부가 콘월이나 켄트의 남부 해안가에서 대기하고 있던 배에서 차 화물을 내려서 배에 실어오면, 농부와 노동자들은 육로로 운반했으며, 성직자가 교회 지하에 밀수 차를 보관했다. 뇌물을 받은 세관 관리도 공식적인 동인도회사 창고로 차가 운송되기 위해 템스 강으로 들어서기 전에 배 선장과 높고 낮은 관리들이 공모해서 밀수한 차 주머니를 챙기곤 했다. 밀수를 감시해야 하는 무역국 직원들 역시 법적으로 수입되는 차가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므로 밀수 차를 사고 소비했다.

 

 

 

 

"참으로 기묘하게 탄력적인 양심이 왕국 전역의 도처에서 펼쳐졌다" 라고 1892년 헨리 쇼어가 <밀수의 시절과 밀수 방법>에서 쓰고 있을 정도였다. 밀수 산업은 매우 이문이 많이 남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쪽으로 많은 인구가 몰리게 되자. 어업과 농업에서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는 사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영국 시골 사람들 대다수가 극한의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며 살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그다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 정직함은 누릴 여유가 없는 사치일 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밀수행위를 원칙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밀수꾼을 좋아한다. 그들은 유일하게 정직한 도둑이다. 그들은 별 관심 없는 추상적인 것에 불과한 세금 이외에는 어떤 것도 훔치지 않는다."라고 찰스 램은 쓰고 있다. 램의 이와 같은 솔직한 고백이 동인도회사의 서류에 버젓이 올려져 있다는 사실 사이에는 어떠한 모순도 느껴지지 않는다.. 

 

 

 

 

 

영국 외의 각국도 차 사업에 연관되어 있었다. 네덜란드는 예전처럼 양지에서 활발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처럼 영국으로 차 수출을 계속했다. 네덜란드 선박들은 낮 시간 동안에는 부두에 정박되어 있다가, 밤이 되면 해안가로가서 밀수선으로 변한 어선에 차를 떨어뜨려주었다. 네덜란드는 영국처럼 차가 일반화 된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필요로 하는 차의 대부분을 공급하기도 했다. 다가올 사건을 암시라도 하듯 밀수된 차가 세금이 붙은 차보다 더 선호되었다. 네덜란드인, 영국인, 심지어 오스트리아인까지 고용 하여 급하게 설립된 스웨덴 동인도회사는 스코틀랜드 해변을 경유하여 영국으로 차를 밀수하는 것 이외의 다른 무역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행위가 결코 평화롭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필수꾼들은 무장한 도적들로 호 커스트 갱, 매이필드 갱, 그룸브리지 갱들 같은 전설 적인 이름으로 남은 남자들이었다. 밀수꾼과 세관 관리들 사이에서 무력충돌이 빈번했으며 유혈로 번지기 십상이었다. 일반 대중의 지지를 얻은 밀수업자는 세관 관리를 우습게 생각했으며 자신들의 밀무역을 방해하는 자들을 죽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관리를 죽인 밀수꾼이 잡히면 사형당했고 경고의 의미로 해안가의 교수대에 매달렸지만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밀수꾼은 밀고자들에게 특히 잔인했다. 그들은 내부 고발자를 국와의 증인이라고 불렀고 잔인하게 처형했다. 가장 유명한 예가 호크 허스트 갱 사건이다. 그들은 풀레의 세관을 공격해서 세관 관리에게 빼앗겼던 차 3700파운드를 되찾았다. 그 공격 이후에 갱은 내부 고발자가 있을 것으로 추측했으며, 갤리와 채터라는 두 남자를 의심하게 되었다. 당시에 밀수를 방해하는 자들을 제거할 때 나무에 묶어 채찍질을 가한 뒤 보트에 실어서 프랑스 쪽으로 흘려보내곤 했다. 하지만 이 둘은 잡혀서 심문을 받은 뒤에 지옥 같은 고문의 나날들을 견뎌내야 했다. 그들은 말에 묶여 모든 갱단들의 채찍질을 당했고, 특히 두목인 잭슨에게 아주 심하게 다루어졌다. 극심한 고통에 쓰러지면 잠깐 말의 배 아래에 머리를 묶인 채 말을 타야 했다. 다시 그들은 말 등에 앉혀졌고 이 모든 게 다시 반복되었다. 불쌍한 갤리는 "부탁이야. 제발 머리를 잘라줘"라고 외쳤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갤리는 모래 구덩이에 파묻혔다. 밀수꾼들이 산채로 그를 묻었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마치 보호하는 듯이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발견되었다. 차터는 우물에 거꾸로 매달려져서 돌에 맞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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