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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차 위조 사업

by An마담 2020. 7. 14.

차 위조 사업

 

 

 

차에 대한 수요가 너무 많아지자 

밀수와 함께 큰 이윤을 올리는 다른 사업이 번성하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차에 이물질을 섞는 사업이었다. 유럽 시장의 수요 증대에 부응할 수는 없지만 돈 벌 기호를 놓치기 싫은 중국인이 이 일을 먼저 시작했고, 곧 유럽으로 파급 되어 일대 산업이 되었다. 런던에 여러 개으 차 가게를 가진 젊은 차 수입상인 리처드 트와이닝(트와이닝의 창립자인 토마스의 손자)이 런던 근처 마을 전체가 위조 차를 직업적으로 생산하여, 내년 20톤에 이르는 위조 차를 생산한다고 불평할 정도였다. 

 

 

 

 

 

트와이닝에 따르면 위조차를 만드는 방법은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물푸레나무 잎에 녹반과 양의 똥을 넣고 구리와 함께 끓인다. 액체에서 건져낸 잎을 말린 후 사용하기 좋은 크기가 될 때까지 밟아서 부스러뜨린다. 위조에 사용된 첨가물에 대해서 기록한 문서를 보면, 이미 사용한 찌꺼기를 말린 찻잎, 또는 차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식물의 잎이 올려져 있다. 게다가 무게를 늘리기 위한 석고, 진흙, 쇳가루, 모래, 그리고 외양을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프러시안 블루, 강황가루, 동석, 흑연 등이 첨가되었다. 톱밥도 선호되는 첨가물이었는데 이러한 것들은 너무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정부는 "황제폐하의 백성에 대한 불이익과 국가 세입의 감소, 정당한 무역업자의 손해와 편법을 조장하는 행위이다."라고 언급하고, 덧붙여 "목재, 숲, 초지의 손상과 파괴"에 대한 유려를 표명했을 정도였다.

이런 가짜 차의 맛은 어떠했는지는 오로지 상상에 맡길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당시 사람들은 그런 차를 매일 대량으로 마셨다. 영국인들은 미각 치라는 유명한 편견이 나온 것은 일상 식단에서 이런 식료품이 엄청나게 쓰였던 시대 로거 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녹차는 당시에는 홍차라고 불리던 보이차보다 위조하기가 훨씬 더 쉬웠다. 그 결과 유럽인들은 녹차에 대한 신뢰를 잃고 홍차를 더 선호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세계에서 소비되는 전체 차의 80퍼센트가 어떻게 해서 홍차가 되었는지 어느 정도 설명을 해주고 있는 듯하다. <차에 대한 모든 것>의 저자 월리엄 유커 스는 차 위조 산업이 의도했던 것이 아니었지만, 우연의 결과로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평했다.

 

 

 

 

 

1725년 혼합물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어, 위조 행위에 대해 100파운드의 벌금을 때렸지만 사태를 개선하지 못했다.. 1766년에는 법이 더 엄격해져서 감옥에 투옥시키게 되었고, 1777년에도 법률이 강화되엇다. 그리고 1736년 밀수법 또는 밀수에 대항해서 의회에서 제정했던 다양한 법률들 역시 밀수 산업을 없애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원인은 그런 법을 제정하는 입법자의 무능한 이해력과 판단력 때문이었다. 1781년 법안은 운송수단을 단속해서 밀수를 막는다는 '기가 막힐 정도로 황당한'법안의 한 예가 될 것이다.. 데니스 포레스트는 이 사건을 <영국을 위한 차>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차의 양에 따라 세금을 물리려고 했던 찰스 2세의 시도를 이은 이 마지막 방법은 역대 차문화사에서 가장 얼빠진 입법이었다. 6파운드 이상의 무게가 나가는 차 꾸러미는 외부에서 런던으로 들여올 수 없거나, 또는 40파운드(후에는 20파운드)이 상 차 꾸러미는 시골에서도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운반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었다. 런던에서 가지고 나가는 것은 제한이 없었다. 이에 대해 밀수업자들은 교외에 '가게'를 여는 것으로 유쾌하게 답을 했는데, 교외에 가게를 구축하고 여기에서 밤낮으로 6파운드 차 꾸러미들을 런던으로 공급했다'"1784년 월리엄 피트는 귀정 법을 제정해서 세금을 119퍼센트에서 12.5퍼센트로 대폭 인하했다.. 그 후 차에 관련된 불법행위들 대부분이 사라지게 되었다. 밀수업자와 국산의 위조 차를 팔던 가게들은 사실상 하룻밤 사이에 일거리를 잃었다. 하지만 포레스트가 책에 썼던 대로, 차 무역은 무엇보다 밀수업자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비합법적인 은밀한 모험과 할인된 가격 덕택에 영국의 구석구석의 일반 가정에까지도 차 마시는 습관이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정부가 관심을 가지는 한 귀정 법에 의해 세입이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 차세는 완전히 폐지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금으로 간단히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었다. 이번에 새로 과세대상이 된 것은 창문이었다. 창의력이 풍부한 입법가들은 사람이 사는 집의 유리창 숫자를 세는 게 더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번거롭게 밀수된 차를 좇는 대신에 벽에 얼마나 많은 숫자의 창문이 있는가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 덧붙이자면 귀정 법은 부유층 사이에 창문이 많은 건물을 유행시키는 한편, 빈민들은 아무리 작은 창문이라도 가능한 벽으로 막아버리게 만들었다. 

 

 

 

 

 

그 후 극동에 남아 있던 불순물이 섞인 차였던 말루는 1875년 음식과 약물법이 발효됨에 따라 사라졌다. 말루는 사용한 차 찌꺼기와 리라고 불리는 가짜 찻잎으로 만든 위조 차인데, 모두 제조업자나 중간상인에게 반품되었다. 결국 남은 위조 차를 팔려고 했던 상인들은 오래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또한 입법 외에도 영국의 퀘이커 교도인 차 상인 존 호니만이 차 위조의 위험에 대항하는 천재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었다. 그때까지 전 세계 어디서나 차를 큰 통에 담아놓고 무게를 달아서 매매했다. 그는 차를 무게를 달아 봉한 뒹 신용할 수 있는 식료품상의 이름을 붙여서 포장해서 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호니만의 티로 말이다. 이것은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허가를 얻는 데 시간이 걸렸다. 호니만은 차 산업에서 이름을 퍼뜨리기 위해서 수년 동안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포장한 차를 팔고 다녔다. 마침내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행을 불러일으켜 세기말에 들어서서는 고가의 상자에 넣은 차가 생산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현대인은 가게 선반에 늘어서 있는 대량 생산된 깡통과 종이상자 패키지 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최소한 거기에는 양의 똥이 들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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