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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차의 발견

by An마담 2020. 7. 9.

차의 발견

 

고대 중국의 치료사들은 차가 대지의 영혼과 정수를 담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영혼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생각되는 여러가지 약초와 광물을 실험했는데, 이것들이 건강과 장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식물과 광물이 영혼의 정수를 많이 담고 있기 때문에 좋은색을 띠게 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옥의 비취색은 그 빛나는 녹색때문에 아주 강한 효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치료사들은 상록수인 차나무의 이 향긋한 초록빛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으며, 비취빛 거품으로 알려지게 돈 것일지도 모른다. 신농이 처음 차나무를 발견하게 된 경위에 대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가 중국 남부의 산맥 지대를 여행할 때였다.. 늦은 오후 신농이 잠시 멈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끓인 물이 안전하다고 신농이 가르친대로, 하인들은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갑자기 언덕에서 불어온 바람에 근처 덤불에서 날아온 마른 잎들이 끓는 물에 떨어졌다. 호기심 많은 약초학자인 신농은 이 혼합물을 마셔보았는데 살짝 쓴맛이 느껴졌지만 원기가 회복되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기운이 넘치는 것이었다. 그는 이 나뭇잎에 영혼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여. 실험을 해보기 위해 집으로 가져왔다.. 이렇게 하여 차는 인류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인류는 차라는 멋진 선물을 받게 되었다. 기원전 2732년의 일이었다.

신농은 중국의 신화속의 삼황 중 두번째 신으로 추앙받는다. 전설에 따르면 신농은 기원전 28세기에 어머니가 신룡세게서 영감을 얻어 태어났다고 한다. 신농은 황소의 뿔과 머리를 갖고 있고 몸은 사람이었다. 그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말했고 칠일 후에 걸었다. 나무를 잘라 구부려서 쟁기와 보습 같은 농기구를 발명해서 한족에게 농경을 가르쳤고 염제라는 지위를 얻었다. 나아가 약초를 연구하고 많은 약초 처방을 만들었다. 신농의 배는 투명하여 위장이 다 보여서 섭취한 음식물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온갖 종류의 약초, 나뭇잎, 열매 과일, 뿌리의 맛을 보고 그 효능을 관찰하고 독의 존재 여부나 각 식물의 유용성 여부를 관찰했다. 하루는 맛을 보다가 72번이나 중독 되었는데 이때 신농은 차를 먹고 해독을 했다고 한다. 이런 까닭으로 신농은 중국 의학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또 모든 차에 관련된 책들은 최초의 차나무 바련자로서 신동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다루고 있다.

이런 오래된 이야기에 정확한 연대가 남아 있는 게 신기하지만 이것은 사전에 역사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야기와 연대를 끼워 맞추려고 하는 중국인의 오랜 습관의 결과일 뿐이다.

프랑스 민속 식물학자인 조르쥬 메테이유는 차에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이 <신농본초경>이 아니라 동진(317-420)의 상거가 지은 <화양국지>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파지"편에 보면 기원전 1066년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먕시킨 뒤에 은나라의 유민으로부터 차를 조공받은 기록이 있다.. 그 밖의 기록들에서도 차를 마시기 시작한 시기가 기원 전후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 중국에서는 다양한 다른 언어들이 사용되었고 한자 표기가 지역에 따라서 다르게 발음되기 때문에 오해는 피하기 어렵다. 차의 시작은 기호음료가 아닌 치료약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중요한 의한서인 <신농본초경>에서도 차를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은 신농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고 매우 이른 시기부터 차가 존재한 증거인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은 작자미상으로 훨씬 뒤인 후한(25-220)시기에 쓰인 것이다.. 차에 대한 부분 역시 3세기  정도 지난 후에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역사적 모순이 있긴 하지만 <신농본초경>에는 차에 대한 흥미 있는 정보가 담겨 있다. "차는 술보다 좋은데, 절대 취하지 않게 하며, 사람이 어리석은 말을 하기 않게 하여, 맑은 정신에서 그것을 후회하게 하지 않는다. 차는 물보다 낫다. 병을 전파시키지 않으며, 오염된 우물물 처럼 독성을 띠지 않는다." 천한의 학자이자 철학자인 양웅(기원전 53-기원후18)은 최초로 언어간의 차이를 관찰해서 사전인 <방언>을 저술했다. 그는 이 사전에서 차는 사천성과 운남성의 주민이 마신 것이라고 했다.. 이 지역은 중국의 남부와 서부에 위치하며 한나라 때(기원전 206-기원후220)에 차가 처음으로 야생에서 농경 직물로 전환된 곳이기도 하다.. 그 뒤 차 농사는 중국의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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