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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

차의 가르침

by An마담 2019. 5. 7.

차의 가르침

 

 

차의 가르침

 

 

의술이나 가무나, 혹은 글 잘 쓰는 작은 기술이라도 반드시 가져볼 만하나. 원대한 군자의 도를 이루려고 하면, 혹 거리낌이 있을까 두려워 그런 자잘한 일에 종사하지 않을 뿐이다. 차인들의 예방을 받을 때마다자하는 자신의 차실에 걸린 '치원공니'라는 현판을 보고 새삼 옷깃을 고친다고 한다. 하찮은 소도에 메이지 말라고 다짐을 받으며, '공자님의 다도강좌'를 매일 한 번씩 읽는 사람과, 욕을 매일 한시간씩 하는 사람과 차이는 얼마나 날까?

박학으로 이름난 자하는 기술자가 일터를 떠나 자기 일을 완성할 수 없고, 사업가가 사업장을 떠나 사업을 완성할 수 없듯이 군자는 성현의 학문을 떠나서는 도를 이룰 수 없다고 보았다. 대단한 학이치도의 자리다.

 

찻잔 씻어내고, 손님 맞아 행다를 하는 자하의 제자들을 보고, 자유가 불만인 듯, 하지않아도 될 이야기를 꺼내자. 자하가 당치도 않은 말을 한다며 입에 거품을 문다.찻

"군자의 도에 무엇을 먼저 가르치고 무엇을 나중에 가르치겠는가? 가르침을 받는 사람에 따라 높고 낮은 차이가 있을 뿐, 어린 제자는 작은 예절부터 시작하여 점차 수준을 높여 근본적인 것을 가르치면 되지. 굳이 고원한 도를 무리하게 주입하며 가르칠 필요는 없네"

 

공부가 어렵다고 학생들이 다 도망가고 말면, 하늘과 성인이 장사가 안 되어 엄청 손해를 본다. 공부 매출이 오르지 않으니까. 처음이 있고 끝이 있는 도의 근본을 모두 터득하고 완성하는 사람은 오직 성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드 외에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대도에 이르도록 차근차근 가르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자하는 그 긴 사유를 몇 순배의 차를 마셔가며 목이 쉬도록 설명했다.

 

세상에서 가질 것을 다 가졌지만, 남에게 손가락질 받고 차인과 대화도 잘 통하지 않고, 신문 한 장 읽기 어려울 정도로 무식학 짝이 없다면 어찌해야 쓰겠나?

"배우고 또 배워야지, 배우고 말고'

공자님께서 목이 타시는지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찻자리나 술자니도 마찬가지다. 정치하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좋고, 머리 나빠 공부만 하는 사람들은 조용하게 혼자 마시는 차가 좋을 것이다. 정치라는 건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면 가야 하는데 알량한 놈들은 당장 자신의 명성과 사사로운 이익을 좇다보니 멀고 큰 이익을 왕왕 잃고 만다. 집 앞 구멍가게도 마찬가지다.

 

 

배움은 끝이 없으니 언제나 낮은 자세로 배우고 그렇게 해서 얻은 공부가 혹 출장이나 가버리지 않을 까 부지런히 익혀가야 한다. 애써 배운 공부를 쉬이 잊어버리는 것은, 아끼고 간수하는 성의가 모자라서 그렇다. 머리가 나쁘고 환경이 어려워서는 분명 아니다. 공부하려는데 누가 와서 방해를 한다면 애써 해 놓은 공부를 어느 누가 훔쳐간단 말인가. 방해하는 놈도 훔쳐가는 놈도 그 범인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다도는 동작만을 보이고, 또 그것을 배우는 유파가 있는가 하면, 다도 정신이니 다도철학이니 하는 좀 더 깊은 학문세계로 높이려는 유파도 있다. 다도도, 보이지 않는 깊은 세계와, 보여만 주려는 품세도 동시에 존재함을 상기해야 한다.

 

"유익한 즐거움이 세가지요, 해로운 즐거움도 세 가지다. 남의 장저 말하길 좋아하고, 좋은 벗 많이 사귀길 좋아ㅏ고 예악에서 절도 있길 좋아하면 유익하다. 건방지길 좋아하고, 절제없이 쏘다니길 좋아하고, 잡기에 빠져 놀기 좋아한다면 이는 해로운 것이다."

차 마실 줄 아는 사람이 이 삼요를 모르면 차 마실 자격이 없고, 다도일가에 등록조차 어려울 만큼 삼요는 중요하다.

차가 몸과 마음의 나쁜 기운을 없앤다고 믿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부적에 茶라는 글자를 썼다.

 

17세기에 쓴 '산림경제'에는 '단오날 오시에 주사로 '茶'를 써서 붙이면 사갈이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사갈이란 뱀과 전갈을 뜻하기도 하지만 남을 해치거나 싫고 불쾌한 사람을 뜻하기도 하므로 차부적을 보면 나쁜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못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고려와 조선시대 사헌붕의 다시제도나 선비들의 다정신인 사무사(:생각에 그릇됨이 없음)가 백성들으 의식에도 뿌리내렸음을 알 수 있다.

 

 

 1849년에 쓴 '동국세시기' <입춘에는 '입춘날 단오날에 쓸 부적을 만드는데 '신다울루' 넉자를 써서 문에 붙이면 신다아 울루 두 신이 문의 양쪽에 서서 흉악한 귀시니을 쫒는다'고 하였다. 이는 중국의 풍습을 따른 것 같다.

조선시대에도 여성들이 차를 끓여 올린 경우가 많았다. 궁궐의 차 심부름도 궁녀가 하였으며 지방관청에는 차모가 있어 관리에게 차를 끓여주었고, 기생들도 다례를 베푸는 일을 하였다. 세종때는 처녀를 뽑아 사신들에게 다례를 행하게 하기도 하였다.

 

 

의식다례를 여성이 행하기도 하였다. [진찬의궤]에는 여집사가 왕세자 앞에 차를 올리고 여관:(궁녀)은 왕세자빈 앞에 차를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과일을 올린다고 했다. 왕이 주다례를 행한 후에 대비도 따로 다례를 행한 경우도 있었다. [주자가례]나[사례편람]에는 주부가 점다하여 다병을 들어 신위앞에 차를 따르고, 혹은 맏며느리나 맏딸이 차를 따른다는 내용이 있었다. 또 누에 칠 때는 여성이 잠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세종때 편찬한 농업서적인 [사시찬요]에는 '제사를 지낼 때 향과 음식과 떡을 갖추고 누에 칠 여인을 시켜 제사드리게 하는데 이때 술을 쓰지 않고 차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조선시대 차농요를 보면 일반 여염집 여성들이 삼신단에 햇차를 달여 올리고 소원을 빈 내용도 볼 수 있고 흔히 차를 즐겨 끓여 마셨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성 문인들도 거문고 타며 차 마시고 많은 시를 지어 남긴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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